석산꽃

10월 상순이 되면 지금까지의 무더위가 갑자기 시원해집니다. 기온이 30도에서 20도로 내려가고 찬바람이 세게 불게 되었습니다. 사가현은 벌써 가을입니다.

가을이 되면 벼 베기가 시작합니다. 벼이삭은 녹색에서 황금색으로 색이 변하고 논 주변에 선명한 빨간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석산꽃입니다. 영어로는 스파이더 릴리라고 부른답니다.
이 꽃을 피안화라고 부르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늘고 긴 짚은 빨간색 꽃잎을 가지는 이 꽃은 일본의 불교 피안(彼岸)제 시기에 일제히 핍니다.

논두렁 주변에 석산꽃이 피는 것은 그저 단순히 보기에 예쁘다는 이유뿐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종류의 식물에는 독이 있고 심어두면 외적을 방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땅 속에 있는 석산 알뿌리에 독이 있습니다. 식물의 외적인 작은 동물이 논에 들어와 쌀을 먹는 것을 막아 줍니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본인의 지혜입니다. 사가현에서는 쌀농사가 번창한 이유에서 9월 하순부터 10월 상순이 되면 석산꽃을 아무 데서나 볼 수 있습니다. 선명한 빨간색이 황금색의 논을 둘러싸듯이 피어 있는 풍경이 보기에도 아름다워서 인상적입니다.

제가 처음에 석산꽃을 알게 된 계기가 실은 일본 TV 드라마입니다. 주인공이 다리를 건너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하얀 안개가 땅 일면에 퍼져있고 다리 반대쪽에는 빨간 꽃이 일면에 피어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다리를 건너서 맞은편에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뒤돌아보는 장면에서 주인공이 눈을 뜹니다. 위독 상태에서 소생한 것입니다.
석산꽃은 이승과 저승을 잇는 상징으로 많이 사용되는 꽃입니다. 우리 인간이 사는 세계와 저승세계. 그 사이에서 꽃이 피고 있습니다.

저는 사가에 이사 와서부터 처음으로 가을에 피는 석산꽃 실물을 구경했습니다. 실제 석산꽃에는 빨간색 외에도 노란색이나 흰색도 있습니다. 조금 바뀌어서 보기에도 아름답습니다.

오기시에 에리야마라는 곳이 있습니다. 높이 250미터. 덴잔 산계 중 하나입니다. 에리야마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크기의 약 600개의 다랑논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매년 9월 하순부터 10월 상순쯤 벼 베기 시기가 되면 피안제가 개최됩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빨간 석산꽃이 일제히 다랑논의 땅속에서 얼굴을 내밀며 피기 시작합니다.
9월 하순부터 10월 상순에 걸친 시기에 사가현에 올 기회가 있으면 꼭 논두렁 주변에 피어 있는 석산꽃을 사진 찍어보세요. 매우 가을다운 예쁜 사진이 나올 거라 생각됩니다.



이름:노이
출신:태국 방콕
일본인 남편과 아들과 함께, 사가현 다케오시 와카키초에서 육아 중.
태국에 있을 때는 아트·출판 관계에서 일했습니다.
규슈 통역 특구 가이드 자격(태국어)을 가지고 있습니다.